아이티(Haiti) 를 품은 미스 유니버스
아이티(Haiti) 를 품은 미스 유니버스
카리브 해에 위치한 이스파니올라(Hispaniola) 섬의 가난한 나라가 아이티(Haiti)다. 원주민어로 “산이 많은 땅”이란 의미다. 전 국토의 3/4 이 산이다. 북부 산맥은 생 리콜라스 반도를 이루고, 러셀산은 높이가 2,680m 이다. 카리브해의 무역풍 덕분에 연간 평균 기온이 27 C도 이며, 야자, 마호가니, 소나무등이 무성했던 곳이다. 정복자들의 탐욕으로 울창했던 수림들은 벌목되었고, 민둥산에 비가 내리면 시뻘건 토사가 바다로 흘러들어 주변 6-7km 까지 흙탕물로 번지게하는 벌거숭이 땅으로 변했다
가난이 진혼곡처럼 짙게 드리워진 아이티엔 비극적인 요소들이 많다.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와 극소수의 백인을 뺀 나머지 95%가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이다. 본래 아이티엔 원주민 카리베족과 타이노 인디오들이 살고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에의해 멸절 된 후 그땅은 흑인 노예들로 채워졌다. 건장한 젊은이는 황금보다 비싸게 미국 루이지애나로 팔려갔고, 남겨진 50여 만명의 노예들이 사탕수수, 목화, 쪽, 커피 농사에 강제로 투입되었다. 1804년 노예들이 프랑스에 저항하여 세계 최초 흑인 공화국을 설립했고, 1957년 부터 계속된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와 부정부패로 오랫동안 공포와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두번째 요소가 가난이다. 전체인구 700만명 중 75%가 $2달러 미만의 돈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서반구 최빈국에 속한다. 아이티 최악의 슬럼화 지역인 ‘씨 떼 쏠레이(cite soleil)’에서는 여전히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간식으로 판다. 고운 채로 흙을 고른 후 물을 붓고 약간의 소금과 마가린을 풀어 짭짤하게 간을 한 후, 손바닥으로 호떡처럼 눌러 광주리에 담아 판매한다. 시장기를 면하려고 먹은 진흙 쿠키엔 각종 기생충이 살아있어 종일 배를 움켜쥐어야 한다. 대를 물리는 가난이 정점을 이뤘던 때가 2010년 1월 13일이다.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 au prince)를 강타한 강도 7.0의 지진이 대통령궁을 비롯한 국회 의사당, 공항, 감옥, 병원과 가옥들을 초토화시켰다. 사망자 22만명, 부상자 30여만명, 지진 이후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230만명이 폐허더미 옆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세번째, 인간다움이란 최소한의 시민의식, 공공 질서 의식도 강진에 무너져 매장돼 버렸다. 밤낮없이 주절거리는 부두교(Voodooism) 영매의 저주스런 주술이 강력한 영향력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고, 가까스로 살아 남은 자들은 식욕, 성욕이란 무서운 본능에 지배당해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을 성폭행과 강간으로 유린하고 있다. 배변욕을 느끼면 어디서든지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소변을 해결하는 그곳엔 코를 쥐게하는 악취가 진동한다.
가난과 슬픔, 절망과 고통이 범벅되어 울고있는 아이티를 품은 전우주 닥터 (미스 유니버스, 감염 내과의) 는 매년 두차례 의료 선교로 저들을 섬기고 있다. 헝겊 천막으로 임시 진료실을 만들어 환자를 대한다. 창문 조차 없는 닫힌 공간은 한증막 같다. 지진때문에 바닥은 군데군데 금이 갔고, 무더위에 푹신하게 곰삭은 사람들의 대소변이 머리를 혼미케 한다. 평생 의사 앞에 서 본적이 없는 환자들은 청진기를 들이대면 입을 벌린다. “메르시 본제, 예수님 사랑해요… 베니슈아 리테넬, 사랑해요….딸래 딸래, 기다리세요… 꼬네꼬네, 예 알고 있어요…”. 매일 270여명의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며 진료하는 그는 아이티의 슈바이처다. 환자의 숨은 병을 알 수 있도록 , 시효 적절한 치료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환자를 맞이하는 그의 섬김은 숭고하기만 하다. “엔누 뜨아바이 퓨레센냐 아반 쏠레바 꾸쉐…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타시고..” 찬송 한구절이 무더위와 고단한 진료 일정에서 그를 견고하게 세운다.
(도시빈민선교 참여 문의 703-622-2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