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방주
벧후 2:5-8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베드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성적인 음란한 행실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한 일들은 의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였다. 그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은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 즉 우리 세대들에게 본을 삼기 위하여서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 노아 시대의 심판과 소돔 고모라의 결과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마치 배와 같다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가 흥남 부두에 도착하여 피난민을 태운 것이 1950년 12월 22일이다. 로스엔젤레스 무어 맥코맥사(Moore – Mccormack Lines) 에 소속된 빅토리호는 총 길이 455피트(138.7m), 7천 600t 크기로 전쟁 물자를 운송하던 화물선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 화물을 내려 놓은 뒤 황급히 흥남 부두로 향했다. 당시 흥남 부두에는 퇴각하던 미군과 한국군 10만 5천명과 피난민 9만명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긴급한 해상 퇴각을 도모하던 때였다. 미 육군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해상 철수 작전을 승락했다.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비행기 폭격과 함포 사격을 동시에 퍼붓는 동시에 군함과 상선 200척을 총 동원하여 피난민 철수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또 알몬드 장군은 미군이 전쟁에 사용하던 군수품과 무기들을 흥남 부두에 하역하고 중공군이 노획하여 사용치 못하도록 부두와 함께 불태워 버리고, 무기와 군수품이 실렸던 배의 빈자리에 피난민의 고귀한 생명을 채웠던 것이다.
원래 빅토리호의 정원은 60명이었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어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던 상황이다. 배가 흥남 부두 근처에 도착할즈음 레너드 R. 라루 선장은 쌍안경으로 전쟁의 참상을 낱낱히 보았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피난길에 오른 저들의 남루한 행렬들, 피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진 채 처자식을 꼭 부등껴 안으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선장의 추상 같은 명령이 선원들에게 하달된다.
“배 운항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외에 나머지 모든 것을 버려라. 한 생명이라도 더 태울 수 있도록 배에 승선시켜라”.
빅토리호에 올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피난민이 14000명이었고, 항해 도중 태어난 어린 생명이 5명이나 되었다. 음식, 물,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자 선원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음식과 의복까지 나누며 피난민들을 보살폈다. 기적적으로 28시간만에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포화상태란 이유로 입항이 거부되자 50마일을 더 항해하여 크리스마스인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난민 구조에 일익을 감당했던 레너드 라루 선장과 제임스 러니 일등 항해사의 희생적인 사랑은 지금도 기억된다.
또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일에 사용되었던 기적의 배 빅토리호는 베트남 전에도 사용되었다가 1971년 퇴역한 후 1993년 중국에 고철로 팔려 배 본분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라졌다. 지금도 오고오는 모든 세대에서 고마운 배로 회자되며 칭송을 받는다.
Ex1) 1940년대 말, 미국 정부는 USL (United State Lines) 라는 해운 회사를 운영하던 윌리엄 프랜시스에게 9억 6천만달러 규모의 해군 수송선 주조를 맡겼다. 전쟁을 대비하여 한 번에 1만 5천명 병력을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는 함정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임무였다.
1952년 마침내 완성된 SS United States 는,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최고 안락한 객실 695개, 전체 선원과 승객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4개의 대형 식당, 3개의 바와, 2개의 극장, 온수 수영장, 시원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2만 제곱미터의 갑판, 19개의 엘리베이터, 냉난방 시설 완비, 44노트(시속 55Km ) 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크고 튼튼한 모터, 연료와 보급품을 공급받지 않고서도 10000 km 를 운행할 수 있는 당시 최첨단, 초고속 수송선이 건립됐다. 건조후 유감스럽게도 이 배는 제대로 사용되어진 적이 없다. 1962년 쿠바 사태 때 혹시 모를 쿠바 시민들의 해상 탈출시 출동할 채비를 갖춰본 것 외엔 변변한 군사작전에 사용되지 못했다.
퇴역할 때까지 이 배는 본래 건조의 목적처럼, 전쟁터에 15000명의 병력을 실고 전속력으로 긴급 출동하는 사역은 전무했고, 불행하게도 이 배가 대신했던 사역은, 17년동안 대통령, 주지사, 저명 인사들 약 1500명을 태우고 호화 유람선 처럼, 주요 인사들의 리셉션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미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건조한 초대형 수송선에 전투에 투입될 병사들은 태워 본 적이 없었고, 도리어 달콤한 낭만을 즐기는 사회 명사들의 사교장으로 도용되고 말았다면 분명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송선이 병력을 전장으로 신속하게 운반하려는 목적처럼, 교회 역시 영혼을 구령한 후, 변화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 항구에 도착하기전까지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구원의 방주, 제자 훈련장소, 각동 각처를 향해 전도하러 나가는 장소, 세상속에 소금과 빛으로 사용되는데 주저함이 없는 거룩한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피난민들에게 값비싼 생명을 선사한 빅토리호처럼, 세상속에 세워진 지역 교회들도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방주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는 결코 호화 유람선처럼 크고, 넓고, 사치스런 편의시설을 마음껏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곳이어선 안된다. 도리어 영적 전투를 잘 감당하기 위해 전신갑주로 무장한 구축함 같아야 한다.
또 교회는 이지스함처럼 적의 공격 징후를 미리 파악하여 원점 타격을 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유지하는 곳이어야 한다. 울며 삼킬자를 찾아 다니며 으르렁 거리는 사단의 영적 공격을 미리 파악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 장착해야 한다. 그러러면 성도들이 늘 깨어서 기도하며, 성령님의 역사에 늘 주목하고 근신하여 영적 싸움을 충성스럽게 감행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영원한 소망의 항구를 목표로 출항한 구원선은 풍랑이 부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안전하게 기항 할 수 있다. 승선한 모든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선장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것 처럼, 지역교회라는 구원의 방주 또한 예수의 사람들을 선원으로, 제자로 훈련시켜 자기 몫의 사역들을 감당해야 한다. 선원들이 탁월한 전문성과 충성스런 사역을 통해 승선한 승객들을 섬기고, 배에서의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것 처럼, 교회 역시 세상과 사람들을 겸손히 섬겨야 한다. 매일 매순간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 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심을 날마다 선포되어지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Ex3) 굿스푼이란 배는, 2004년 워싱턴 지역에 몰려온 중남미 출신의 가난한 도시빈민 라티노들, 그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사회복지적 서비스로 돕기위애 건립된 배다. 매년 북버지니아,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도시빈민 35000명 이상을 전도하고, 무상 급식, Food Bank, 교육, 의료 서비스로 섬기고 있다.
굿스푼 배에 승선한 도시빈민 라티노들은, 합법적인 체류신분이 없고, 미국내에서도 3D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에 종사하며 중남미 가족들에게 노동한 품삯을 보내고 있는 복음이,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이다.
<결론>
마 24장 37~39절에서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때에는 그 상황이 노아의 때와 흡사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할 것이라는 말인가?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와 곧 임하는 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특히, 여러가지 경고의 말씀들에 대한 인류의 반응이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과 아주 흡사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살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또한 왜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가 라는 생애의 목적이 뒤바뀌어 있었다는 지적이다.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두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 들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120년 동안이나 계속적으로 경고하시고 호소하신 말씀을 거절하였다. 나중에는 그러한 말씀들을 듣고 조롱 할 정도로 마음들이 둔하여 있었다. 그들의 부절제한 생활들과 음란한 생활, 또한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까 더 잘 마실까 하는 생활의 염려들에 집중된 생활 방식은 그들의 두뇌의 기능을 둔하게 만들었다. 생활의 염려는 지성적인 면에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대하여 이해하는 영적인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고 안다고 하면서도 생활의 염려에 집중하면 성령의 음성을 민감하게 듣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감각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영적인 눈이 어두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