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의 문신
용서와 사랑
본문: 에베소서 4:30-32절
<질문>
1. 왜 사람들은 몸에 부분적 혹은 전신에 문신(Tattoo)을 하는 것일까?
2. 성경은 문신하는 것에 대해 어디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3. 크리스챤인 우리들은 문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4. 크리스챤인 우리가 문신, 피어싱, 성형 수술, 외모를 치장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을 갖기 보다는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할까?
자전거 도둑의 문신
지난 달, 브라질 쌍파울로 시 북쪽에 있는 썽 베르나르도 깜뽀(Sao Bernardo do Campo)에서 이마에 강제로 문신을 새겨넣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전거를 도둑질 하려다 현장에서 붙잡혔던 열 일곱살 먹은 소년의 이마에 낙인처럼 큼지막한 문신이 새겨졌다. “에우 소우 라드롱 데 바실렁, Eu Sou Ladrao E Vacilao, 나는 도둑이고 패배자다” 이마에 꽉 차도록 크게 쓰여진 ‘자전거 도둑, 패배자’란 지울 수 없는 문신은 죽고 싶을 정도로 큰 수치감을 주었고, 식구들의 애간장을 녹일만한 고통스런 상처로 선명하게 남았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이토록 잔인한 문신으로 징벌할 수 있단 말인가.
썽 베르나르도 깜뽀에 거주하는 문신 기술자 마이꼰 레이스(27세)가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되는 법이라며 공공연히 망신을 주는 경고성 문신을 새겨 넣었고, 그의 친구 호니우도 아라우조(29세)가 관련 동영상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면서 브라질 전역과 중남미, 그리고 전 세계에 순식간에 유포되고 말았다.
즉결 심판자의 손에 붙잡힌 소년은 왜소했고 겁을 잔뜩 먹은 채 의자에 앉혀졌다. 커다란 덩치의 어른 손에 머리채가 잡혔고 강제 문신이 삐뚤빼뚤 다 새겨지기까지 미동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제발 얼굴말고 신체 다른 부위에 해 주세요, 그것도 아니면 제 팔 하나를 부러뜨려도 좋으니 제발…” 애걸복걸 해 보았지만 한번 장난기가 발동한 미치광이 문신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며칠 후 범인들이 경찰에 붙잡혔고 조회 결과 그들은 전문 소매치기 전과자였다. 쌍파울로에서 핸드백을 날치기 했고, 훔친 휴대폰과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다 검거되어 5년 4개월 형을 살았던 범법자였다. 소매치기와 도둑질로 잔뼈가 굵었을 대도(大盜) 가 어린 좀 도둑을 훈계한 것 치고는 방법이 너무 치졸하고 잔인해서 공분을 사고있다.
문제의 자전거 주인 아데밀손 올리베이라(31세)의 눈물겨운 호소가 브라질을 울렸다. 그녀는 장애인으로 신호등 앞에서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걸로 연명하던 불우한 처지였다. 자신의 자전거로 인해 벌어진 불미스런 소식을 듣고 밤새 눈물 흘리며 괴로워했었다며, 이제 소년을 용서하고, 그의 이마에 천형처럼 기록된 저주스런 문신을 힘을 합쳐 제거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쌍파울로 마이리뽀라 미성년자 재활센터에 입원한 소년은 내년 3월까지 장장 10개월에 걸쳐 레이저 문신 제거 시술과 함께 알코올, 마약 중독 재활 훈련을 무상으로 받게 되었다. 성경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권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하는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다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파괴되었습니까? 무엇이 근본 문제입니까? 성경은 죄라고 진단합니다. 죄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파괴된 관계, 단절된 사귐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혔던 교제가 회복됩니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랑이 회복됩니다. 상처가 치유됩니다.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인적으로 적용시켜서 실현시키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가 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하는데 사랑과 일치의 장애물이 되고, 시험거리가 될 만한 문제를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것들입니다.
(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버려야 할 죄
사도 바울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을 31절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교회 안에서 혈기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혈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즉,‘상대가 틀렸고 내가 옳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다.’이것이 혈기입니다. 우리가 혈기를 부리지 않으려면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훼방하는 것, 그리고 모든 악의를 버려야합니다.
2. 여기서 ‘악독’이란 ‘오래된 원한’을 말합니다. 남에게서 당한 모욕, 피해, 무시를 두고두고 기억하며 그 쓰라린 감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빨리 버리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며 자꾸 생각을 떠올리며 되풀이할 때 깊은 원한이나 원망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나를 망가뜨리는 쓴 뿌리가 되어 대인관계에서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악독’이 있을 때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노함’과 ‘분냄’입니다. ‘노함’은 감정적인 격분을 의미하고, ‘분냄’은 뿌리 깊은 적대감을 말합니다. ‘노함’과 ‘분냄’은 또 ‘떠드는 것’과 ‘훼방’으로 표현합니다. ‘떠드는 것’은 흥분하여 서로 싸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을 말하고, ‘훼방’은 당사자가 없는 가운데 그 사람을 비방하여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악의’이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의 죄악들‘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훼방’을 포함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즐기고, 이를 꾀하는 악한 성향을 말합니다.
3.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덕목
그 대신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을 닮은 모습으로 대신하여야 합니다. 32절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 ‘인자’를 ‘이웃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심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인자한 마음이 남의 슬픔, 남의 고통, 남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까지도 인자로우신 분이십니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5. 용서의 의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아주 적절한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마 18:23-27)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